詩人의 마을
흘러라 꽃 그림자 / 석여공
고운(孤韻)
2020. 9. 28. 09:58
그립거든 이렇게 해
잔을 두 개 놓고
지나는 것이 바람 같으면 바람을 담아서
강물 같으면 강물을 담아서
나 한 잔 그대도 한 잔
천불전 댓돌 아래 푸른 들꽃들
좌복에 눌어붙은 수좌처럼 앉았거든
하늘에 걸린 풍경이 새벽을 깨우고
그 새벽 몸에 적신 천 년 된 지붕
기와 깨지는 소리가
이제 막 한 소식 하는 소리로 들리거든
위하여 나 한 잔 그대도 한 잔
때로는 속절없음도 맑아
범조각 시리게 덮인 눈이 녹아 뚝뚝
떠나온 날 빗방울 같이 떨어지거든
그대 눈길 박힌 산천도 한 잔
그대 애타는 꽃 그림자도 한 잔
안개 이는 골짜기 쓰린 새벽도 한 잔
그러다 동굴처럼 쓰러지는 아침
밝아오는 해를 계란 노른자 삼아
나 한 잔 그대도 한 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