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人의 마을

벽지를 바르며 / 박용주

고운(孤韻) 2021. 4. 8. 11:13

누렇게 바랜 낡은 벽지를 떼어내고
깨끗이 물걸레질을 하여
산뜻한 새 벽지로 도배를 하면서
한쪽으로만 밀려도 아니되고
빈틈없이 풀칠하여
무늬맞춰 벽에 바르며
문득 이 세상의 모든 낡은 것에
풀칠하고 싶었다
지켜본 세월만큼 햇볕에 바래고
더러움타고 먼지타서 낡아진 세상을
음습한 습기로 눅눅해진 세상을
빠삭거리는 새 종이로 바르고 싶었다
교만하고 음흉하여 어두운 벽엔
희고 밝은 종이로
슬프고 눈물나는 여린 색깔엔
화사하고 산뜻한 꽃무늬로 도배하고
좌절하고 고통하는 우울한 벽에는
연록으로 반짝이는 싱그러움을 입혀서
밝고 고운 세상으로 풀칠하고 싶었다
간혹은 은은한 상아 빛깔로 호사도 하고
등꽃같은 보라빛 고고함도 함께 칠해서
새롭게 태어나는 세상을 보고 싶었다
낡고 바랜 것이 벽지만은 아닌데
이 한 칸 벽만을 새로 바른다해서
세상의 더러움이 함께 가려지는 것도 아닌데
행여 무늬 틀리지않나 근심하며
내 기대일 벽만을 풀칠하는
이기심을 부끄러워 하면서
내것만을 깨끗하고 밝게 하는
이기심이 슬프기만 해서
풀칠하는 손길이 자꾸만 더디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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