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수첩(孤韻手帖)
친구에게 / 고운
고운(孤韻)
2005. 6. 17. 21:15
친구에게
너는 보았느냐
친구여
밤낮없이 그슬리다
어둠에 쫒겨가는 새벽이 되어
그렇게 쫒겨오는
우리들의 아버지
그 황량한 뒷모습을.
너는 아느냐
친구여
거친 숨을 몰아쉬다
뱉어 던지는 기침속에
점점이 박혀나오는
우리들의 아버지
그 혀밑 씁쓸한 액체 조각들을
친구여
날마다 소주잔을 비우는 것을
깔깔하게 살아남은 입안의 세포들을
그들의
슬프도록 가난한 무언극
그러나 친구여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나뭇가지에 달린 이슬
조심스럽게 떨어뜨리며
신비로운 아침 햇살을
수심겨운 얼굴로 따라가는
우리들의 아버지
그들이 가지고 사는
소박한 이름
"꿈" 이라고 하는 것을.
85. 3. 3. 고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