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人의 마을

성냥개비 / 이외수

고운(孤韻) 2005. 8. 15. 22:16
           성냥개비

         그대는 알고 있을까
          물소리 저 홀로 깊어지는 가을날
          그대 유년의 바람부는 벌판에서
          나는
          한 그루
          몽상의 미류나무
          가지마다 순금빛 음표들을 나부끼며
          그대를 기다리고 있었네
          그러나
          지금은 아니라네
          유년의 물소리는 머나 먼 바다에 이르러
          돌아오지 않고
          통로가 보이지 않는
          직육면체의 단칸방
          나는
          전신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쪼개진 채
          가느다란 뼈 하나로 남아 있다네
          그대 손바닥 위에
          내가 놓여 있어도
          그대는 기억할 수 없으리
          그대 유년의 바람부는 벌판에서
          나는
          한 그루
          몽상의 미류나무
          지금은 소멸의 갈망 속에 침묵하다가
          그대 가벼운 손짓 한 번에도
          점화되는
          영혼의 불꽃
          그대는 끝내 알지 못하리
          어둠이 짙을수록
          눈부시게 소멸하고
          소멸한 그 자리에
          내가 느낌표 하나로 남아 있어도

       

      이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