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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의 마을

하직인사 - 박용주

by 고운(孤韻) 2021. 4. 8.

하관을 하고 마지막 절을 올릴 때
나는 일곱 살, 동생은 두 살이었지요.
묘역 곳곳에 빨갛게 피어난 사루비아와
자꾸만 주먹으로 눈물을 훔쳤던 기억이
아버지와의 마지막이었지요.
흘러내린 누런 상복을 추스려 올리며
돌아서 생긋 웃던 동생의 모습이
왜 그렇게 눈물나게 하였는지요
네가 울면 동생도 따라 우니
이제 그만 울어라.
남아 일생 큰 울음은 한 번으로 족하니
그 한 번이 나라 잃어 슬플 때라 하신 말씀에
소리죽여 울었던
청명한 구월 그 날의 하늘은
별나게 푸르러 눈부셨지요.
나는 아버지를 망월동 묘역에 묻고
동생은 아버지를 공부하러 미국 보낸 지 벌써 십 년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 동안
매양 한자리에 말없이 계신 아버지.
이제는 여기 그만 올랍니다.
올 때마다 가슴에 쌓이는 건 설움이요
돌아서는 발걸음은 납덩이인데
키워주신 세월보다
부대끼며 살아온 세월이 더 많은데
날더러 여기 와 늘 울으라는 건
아버지의 욕심이지요.
어른 돼서 울지 않고 벌초하고
술 따루어 올릴 수 있을 때
그때 다시 올랍니다.
무정타 마시고 기다리지 마소서.
무정하기로야 어린 자식 두고 가신
아버지만 하겠습니까
이제 하직인사 올리오니 이 절 받으시고
바람소리 쓸쓸하고 날 추워도
더는 기다리지 마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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