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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의 마을

표류기 / 이외수

by 고운(孤韻) 2005. 8. 15.

      표류기

 

 

      아직 방황이 끝나지 않았는데 가을이 문을
      닫는다 무참히 낙엽은 져버리고 싸늘한 저
      녁비에 함몰하는 도시 나는 어디로 가야 하
      나 걸음을 멈추면 서늘하게 목덜미를 적시
      는 겨울예감 새떼들이 떠나 버린 광장에는
      맹목의 개들만 어슬렁거리고 있다 예술이
      암장되고 희망도 유보된 시대 시계탑은 침
      묵을 지키고 있다 수은주의 눈금이 내려갈
      수록 눈물은 투명해진다 나는 투명해지는
      눈물로 만들어진 한 마리 해파리 홀로 시간
      의 바다를 표류한다 이제는 누구의 사랑도
      믿지 않는다 오로지 독약 같은 외로움만 일
      용할 양식이다

 

 

      이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