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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의 마을

찔레꽃 / 이외수

by 고운(孤韻) 2005. 8. 17.

찔레꽃

 

마음으로만은

사랑을 할 수 없어

밤마다 편지를 썼었지

서랍을 열면

우울한 스무살 가슴앓이

死語들만 수북히 쌓여 있었지

 

입대하기 전날 아무도 몰래

편지를 모두 잘게 찢어

그대 집 담벼락 밑에 깊이 묻고

다시는 그리워하지 않으리

나는 바삐 걸었네

 

황산벌 황사바람 속에서도

바래지 않던 추억

수시로 가시처럼 날카롭게

되살아나서

하루에도 몇번씩

파고들던 아픔이여

그래도 세월은 가고 있었네

 

제대해서 돌아와

다시 편지를 쓰려는데

그대는 하늘나라 먼 길을 떠났다던가

보름달은 환하게 밝아 있고

편지를 잘게 찢어 묻은 그 자리

찔레꽃이 무더기로 핀 이유를

비로소 알아내고 혼자 울었지

 

 

 

이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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