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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의 마을

부부의 연..

by 고운(孤韻) 2006. 9. 21.

 
 
세월이 흘러 종이장수의 나이 어느덧 마흔 중반이 되었다.

여직도 홀몸이었지만 지은 죄가 있어 여자는 기대도 않고 살았다.

그런데 뜬금없이 중매가 들어왔다. 꽃다운 열여덟살 처자가

늙다리 총각한테 시집을 오겠단다. 

 

드디어 첫날밤, 새악시와 마주한 노총각은 만감이 교차한다.

그래 차마 옷도 벗기지 못하고 있는데 어린 각시가

스스로 저고리를 벗더니 배에 난 끔찍한 흉터를 보여준다. 

웬 종이장수 놈에게 목이 졸려 대숲에 버려질 때

대나무 그루터기에 뱃가죽이 찢겨 그리 징그러운 흉터가 생겼단다.

천운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늙은 홀어미가 제대로 거둬 주지 않아

철부지 때부터 떠돌면서 저 홀로 자랐단다.

 

눈물 어린 고백을 들어 본 즉, 십오 년 전 지리산 장터의

바로 그 국밥집 딸의 사연이다. 들을수록 기막히고 염장이 저려 온다.

어리석을 손!!! 이렇게 만나고 말 것을...

 

이튿날, 종이장수는 어린 아내의 손을 잡고

지리산 깊은 골로 노스님을 찾아갔다.

눈물로 참회하는 그에게 노스님은 자애로운 법문을 들려준다.

 

"부부는 필연이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각자가

무려 7천 겁을 통해 쌓은 인연 때문에 부부로 만난다. 

뉘라도 그것을 피할 수 없다.

일천 년에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로

집채만한 바위를 뚫어내는 시간이나,

일백 년에 한 번씩 내려와 스쳐가는 선녀의 옷자락으로

그 바위가 닳아 없어지는 시간을 일겁이라 하는데

그런 시간 칠천겁이 쌓였으니

감히 헤아려 볼 수 없는 무량수의 시간이다.

그 긴 시간 동안 서로의 과보가 얽히고 설켜 부부로 만난다.

그러니 부부란 참으로 지중하고 또한 지독한 인연이다.

좋든 나쁘든 부부의 인연은 모두 그러하다.

함께 풀어 해결할 것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만나고, 또한 그렇게 산다.

이제 그 이치를 깨우쳤으니 아까운 시간 허비하지 말고,

서로 아끼고 위하면서 후회없이 잘 살아라. 좋은 것이면 좋은대로.

나쁜 것이면 나쁜대로 모든것을 받아들여라.

자기가 지은 것을 누가 대신 살아 주겠는가?

부디 이번 생에서 남김없이 청산하여 절대로 다음 생까지

끌고 가지 않겠다는 각오로써 헌신하며 살아라."

 

 

노스님의 설법은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법망경] 에서

밝혀놓은 가르침이다.

 

사랑의 이름 부부, 칠천 겁의 인연이 무르익어 만나게 된 사이,

지중하고 지중하지만 또한 지독하고 지독한 인연이란다.

그 무량한 시간 동안 맺어 온 인연의 세계를 한번 가늠해 보라.

얼마나 크고, 넓고, 복잡하겠는가! 그 속에 그 모든 문제의 해답이 있음이다.

 

그렇게 유장한 사연으로 만나, 지금 나와 한집에서 아웅다웅

살고 있는 저 '웬수' 같은 짝꿍, 그 애증의 문제들을 지금 당장

눈앞에 드러난 사안으로만 풀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다.

무량한 시간, 무량한 공간에서 이미 빚어진 무량한 因子가 있었음이다.

그러니 그 애증의 관계를 보다 크고 넓게, 저 과거세와 미래세,

그리고 우주 공간으로까지 사유의 폭을 확대하고 통찰하여 싸안아야 한다.

당장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그것을 통째로 받아들여 서로 간에

후회 없이 헌신하라는 것.

 

석가모니 부처님이 사랑으로 애태우는 세상의 모든 부부들에게 주는 당부이다.

 

    

 

  

 

 

 

 

 

혹 옆지기와 옥신각신 하더라도

아! 나의 업이자 숙명이다~ 라고 생각하며

사랑으로 감싸 안아 가야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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