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수첩(孤韻手帖)503 편지 Ⅱ / 고운 편지 Ⅱ. 달빛은 돌담에 묻어가고 풀벌레 고적한 목맨 소리에 마음, 그리움으로 찾아드는 온통 흙 내음새 우두커니 시름없이 잡고 섰노라면 옛초옥 하나가 외로운 산등성. 앵두빛 줄무늬 건너산 비탈에 서고 삭정가지 머리위에 날개 쉬던 산 까치 하나. 보배로운 것은 기억으로 살아나 턱에 손을 괴고 이쪽에는 나의 불면의 밤을 저쪽에는 살가운 고향의 밤을 참나무 숲에는 우물을 파고 나즈막한 초갓집 옆으로 뉘였다 바로 앉혔다. 차라리 그리운 심사야 피어나는 뉘우침인가 별빛은 흘러 강이 되고 눈물이 되는데 아름다운 기억은 남아 하이얀 여백을 메운다. 오! 그대는 나의 심복 오늘밤 그대를 고향으로 보내리. 83. 6. 2. 고운 2005. 6. 17. 그늘 / 고운 그늘 언제나 어슬픈 몸짓으로 다가서며 소리내여 울때보다도 강한 투정으로 체열을 느끼게 하는 그대 아무도 없는 그 깊은 밤 하늘을 소리없이 메우고 있는 무수한 몸짓 그 의미를 나는 모른다. 황량한 뜨락 구석 그 어디메쯤서 울먹이며 서성이는 그림자일뿐 부르는 노래마저 내것이 아니체 하룻밤 사이에 무너져 버린 믿어 달라던 하소연과도 같이 빈손으로 허우적거리는 허전한 목마름으로 도시의 벽에 메달려 꼬이기만 하는 창자의 아픔에 느꺼움에 울상지을 일만 일삼는 설운이의 맘은 세월의 하이얀 여백에다 조그만 가슴을 가득히 가득히 채워가는 연습을 하고 있다. 83. 2. 24. 木. 고운 2005. 6. 17. 겨울나기 / 고운 겨울나기. 황소바람 드나드는 문구멍. 천정뚫린 하늘을 삐쩍마른 손가락으로 가리고 가슴뜨겁게 살갗으로 문지르며 가지를 꺾이우는 아픔과 끈적 끈적히 사랑스런 쭉정이 같은 새끼들 데불고 보채는 새끼들의 앓는 소리 들으며 아프도록 쑤셔오는 허기진 배를 달래야 하는 어느 지아비 어느 지어미. 머리밑 황량히 쑤셔오는 삼백 예순 닷새 눈물 머금고 쳐다보면 몸살난 열 손가락 엄지는 엄지대로 몸을 비틀고 작은것은 작은것대로 눈물 글썽이며 오늘은 지붕밑 발시린 배추 시래기 잘라먹고 한창 어우러지는 저기 별 하나를 따라가 눈다시 크게 뜨고 부실 햇자릴 꿈꾼다. 82. 12. 30. 木. 고운 2005. 6. 17. 하꼬방 전설 / 고운 하꼬방 전설. 후둑이나 지나가는 나뭇잎의 아픈 몸짓을 들으며 구겨진 비명의 거리를 빈가슴으로 맞이하던 슬픈 유년의 이야기를 하늘도 멍청해진 오늘 오랜기억으로 더듬어 갑니다. 엉컹퀴 같이 질긴 안부를 가늠하며 무책임히 떠나가셨던 아부지 처사에 질질 눈물 흘리며 울컥울컥 설운 심정을 토해내는 것을 삶의 회의 일거라고 여겼습니다. 햇살이 은혜처럼 부서져 내리던 그날 어린새가 세상을 날았다는 푸득이며 세월을 안고 날았다는 헤쓱한 이야기를 한낱 구름잡는 식의 객기쯤으로 들었습니다. 평형을 이루려는 불가분의 관계를 역류하며 거기서 무모한 결론을 집어내려 했던 젊음의 절규는 어처구니 없는 현상의 것이었음에 후두둑 지나가는 나뭇잎의 아픈 몸짓을 듣습니다. 82. 11. 10. 고운 2005. 6. 17. 이전 1 ··· 118 119 120 121 122 123 124 ··· 126 다음